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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어디까지가 서비스인가?


 서비스를 무엇이라고 정의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유독 카페에서 과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거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세상이 각박해져 가는 건지, 서로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행인 건 과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사람을 일하면서 만나기 쉽지 않지만, 그 몇 안 되는 사람들이 굉장히 임팩트가 있다는 게 포인트다. 어쩜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파는지 모르겠다.

 

 흔히 진상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보통의 손님과 조금은 다른 손님이라고 하려고 한다. 어쨌든 손님이고 그 사람들도 그렇게 행동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서비스라고 해야 하며 가끔 보이는 보통과 조금은 다른 손님을 어떻게 응대하여야 하는지 얘기해보자.

 

 내가 지불하는 음료값에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는 것일까? 나는 내가 지불하는 커피값에 내가 이용하는 좌석과 음료에 대한 값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즉, 공간과 음료를 사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상을 요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커피를 제공하는 사람은 커피가 나가기까지 손님의 기분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의 서비스만 제공하면 되지 않을까? 그리 어렵지 않다. 들어왔을 때 인사하는 것과 메뉴를 확인하고 메뉴를 정확하게 만들어서 제공하는 것이다. 이게 어려울 건 없다. 하지만 이거조차 제대로 하지 못 해서 손님의 기분이 상한다면 이건 명백하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 잘못이다. 설령 그날 바리스타의 기분이 안 좋다고 한들 그건 그 사람의 사정이지 손님에게까지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서비스직이란 그런 것이다. 공과 사를 그 어떤 직업군보다 철저하게 구분해야 한다. 이건 서비스직의 기본이다. 개인사가 어떻든 간에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제공받으러 온 손님은 당신의 개인사에 관심이 없으며 당신의 개인적인 감정이 손님에게 영향을 가해서는 안 된다. 기본적인 것도 안 하고서 손님을 탓하지는 말자. 

 

 반대로 카페를 이용하는 손님은 앞서 말한 것처럼 정당한 서비스를 기분 좋게 제공받았다면 기분 좋게 카페를 이용하고 음료를 마시면 된다. 그 이상을 서비스를 제공받고 싶다면 적어도 미안한 기색을 보이든, 돈을 지불을 하든 금전적이든 감정의 표현이든 오가야 하는데 그런 거 하나 없이 굉장히 당당하다. 도대체 5,000원짜리 커피에 얼마 큼의 서비스를 바라고 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만든 건 카페가 아닐까? 

외부 쓰레기를 버리는 것부터 아이의 음식을 데우는 것, 본인의 실수로 음료를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카페를 탓하며 다시 만들 것을 요구한다. 웃기게도 이 모든 걸 카페는 다 해줘야 한다. 서비스라는 명목으로 그리고 이래야 다음에 그 사람의 재방문을 기대할 수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 사람이기 때문에 대접받으면 기분이 좋으니까. 근데 좀 과한 거 아닐까? 특히나 우리 아이가 먹는다는 그 말은 도대체 왜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닌데 도대체 우리 모두의 아이인 것처럼 대해주기를 바라는 걸까? 너무 야박한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아이가 많이 먹으면 많이 주문하면 되지,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그 아이를 망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의 마인드면 장사 오래 못하겠지. 근데 이것도 웃긴 것이다. 아마 리뷰라는 시스템과 그놈의 SNS 덕분에 이런 사달이 난 게 아닐까 싶다. 결국 나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 하나로 없는 말들을 지어내서 각종 SNS에 쓰고 그걸 본 사람들은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관심이 없다. 일단 리뷰에 있으면 없었던 일도 사실이 되니까. 그렇다고 무작정 손님을 탓할 순 없다. 이렇게 된 건 결국 카페가 그렇게 한 거니까. 

 

 백 번 양보해서 위에 말한 것들을 다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갈 수 있지만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외부 음식을 먹는 것이다. 외식하는데 집에서 밥 챙겨가지는 않지 않나? 반찬을 챙겨가지도 않을뿐더러. 도대체 카페는 어떤 존재로 자리를 잡았길래 이렇게 된 것일까?

마진이 많이 남는 물장사라는 인식 때문일까? 이게 도대체 그들에게 어떤 피해를 준 것일까? 정말이지 일을 하다 보면 열두 번도 더 화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최선을 다해 서비스를 하는 이유는 내가 선택한 것이고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지 않겠는가? 어찌 되었든 어떤 유형의 손님이든 그 사람이 있기에 매출이 나오고 나도 월급을 받는 것이니까. 

 

 고객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것이 서비스일까? 자선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고객의 부당한 서비스에 대해 얘기를 할 수 있는 조건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최선을 다했을 경우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할 말이 없다. 가는 말이 애초에 곱지 않았는데 오는 말이 고울 수가 없다. 별개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도 많긴 하지만. 이건 서비스직에 있는 한 매일같이 고민하고 또 고민할 거 같다. 무엇이 서비스이며 어디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 말이다. 

 

 결론은 손님 유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을의 위치로 가는 방법 말고는 없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그들을 갑의 위치에 둔 것이며 그렇게 문화를 만든 것이다. 누구를 탓하기엔 이미 고착되어버렸다. 아마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카페들은 이런 서비스까지 세세하게 챙기는 카페가 아닐까? 결국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니까. 재방문을 바란다면 손님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밖에 없다. 물론 적당한 서비스와 맛으로 승부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한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프랜차이즈보다 유독 개인 카페에서 보통과 조금 다른 손님들의 출현 빈도수가 높은 거 같다. 그렇다고  프랜차이즈라고 보통과 조금 다른 손님들의 출현이 잦지 않다는 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그냥 그런 사람들은 어딜 가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정말 마지막으로 제발 우리 아이가 먹을 건데라는 말은 안 해줬으면 좋겠다. 아이가 많이 먹는다면 많이 주문하면 된다. 적게 먹으면 적게 주문해라. 애가 둘이면 두 개를 주문해라. 한 개를 주문하고 애가 둘이라고 하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도대체 왜 자기의 아이가 먹는 거에 돈을 아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자식에게 인색한 부모라니.

그리고 아이는 기본적으로 뛰어놀고 소리를 지르게 되어있다. 그러니 제발 뛰지 말고 소리 지르지 말라고 말로만 하지 말자. 아이를 말과 행동으로 통제하자. 본인의 시간을 즐기는 건 좋은데 그렇다면 키즈 카페에 아이를 맡기고 오는 건 어떨까? 대부분 아이를 방치하고 본인의 시간을 즐기는데, 다른 이에게 아주 민폐다.

아이는 잘못이 없다. 부모에게만 잘못이 있을 뿐.

 

 여전히 나는 무엇이 서비스이며 어디까지 하는 것이 서비스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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